[평가의 재발명 ②] 평가는 세 가지 일을 한다, 그리고 셋 다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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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 우리는 왜 사람을 평가하는가. 이 시리즈는 평가 제도를 더 잘 만드는 법을 다루지 않는다. 평가라는 제도가 애초에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다섯 편에 걸쳐 되짚는다.
하나의 서류가 떠맡은 세 가지 일
연말 평가 시즌에 관리자가 작성하는 서류는 한 장이다. 그런데 그 한 장이 실제로 하는 일은 세 가지다.
분배. 올해 인상분과 보너스 풀은 정해져 있다.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선별. 승진시킬 사람, 자리를 옮길 사람, 내보낼 사람을 가려야 한다.
성장. 각자가 무엇을 더 잘하게 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세 가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분배는 제로섬이다. 한 사람에게 더 주면 다른 사람에게 덜 간다. 선별은 이분법이다. 통과하거나 못 하거나. 반면 성장은 제로섬도 이분법도 아니다. 모두가 동시에 나아질 수 있고, 실패가 오히려 재료가 된다.
성격이 이렇게 다른 세 가지를 하나의 서류, 하나의 면담, 하나의 등급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셋이 충돌할 때 무엇이 밀려나는지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성장이 진다. 매번 진다.
첫 번째 이유: 뇌가 그 대화를 위협으로 처리한다
연봉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상사가 "건설적인 피드백을 하나 주자면"이라고 운을 뗀다고 해보자.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조언의 수용이 아니다.
이 대화의 결론이 내 통장에 반영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비판적 피드백은 성장의 재료가 아니라 생계에 대한 위협으로 처리된다. 그 순간 사람은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자기 약점을 인정하면 손해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가 면담에서 오가는 말은 대개 이런 것들이 된다. 그건 제 책임이 아니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때 이런 성과도 있었다. 관리자는 솔직함이 부족하다고 답답해하고, 구성원은 방어에 실패하면 손해를 보는 게임을 하고 있다. 둘 다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다.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이건 개인의 성숙도 문제가 아니다. 돈이 테이블 위에 있는 한, 아무리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같은 자리에 놓이면 같은 반응을 한다. 제도가 만든 결과를 사람의 태도 탓으로 돌리는 순간,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 목표가 지표로 바뀐다
영국의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이름을 딴 법칙이 있다.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지표가 아니게 된다는 통찰이다.
평가 등급이 보상으로 직결되면, 합리적인 구성원이 취할 최선의 전략은 명확하다. 확실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만 세우는 것. 업계에서는 이를 샌드배깅이라 부른다.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가 못 미치면 등급이 깎이고, 안전한 목표를 세워 초과 달성하면 등급이 오른다. 제도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데 도전을 기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에서 OKR이 성공적으로 안착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서 잃는 것은 개인의 성장만이 아니다. 조직은 목표 설정 시즌마다 구성원들이 자기 능력의 하한선을 신고하는 문서를 수백 장 수집하게 된다. 그 문서로 다음 해 계획을 세운다.
세 번째 이유: 평가하는 쪽도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평가의 정확성을 논할 때 흔히 빠지는 가정이 있다. 관리자는 중립적인 심판이라는 가정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관리자에게도 이해관계가 있다. 팀원에게 낮은 등급을 주면 그 사람은 이직을 고민하고, 팀의 사기는 떨어지고, 면담은 껄끄러워진다. 반대로 후하게 주면 팀원은 만족하고 팀 분위기는 유지된다. 그래서 평가 점수는 시간이 갈수록 위로 몰린다. 인사 연구에서 오래 관찰된 관대화 편향이다.
조직은 이 문제를 강제 배분으로 해결하려 한다. S는 몇 퍼센트, A는 몇 퍼센트. 하지만 이건 정확성을 높이는 장치가 아니라 분배 예산을 지키는 장치다. 결국 관리자는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할당된 비율에 사람을 끼워 맞추게 된다. 팀에 정말 뛰어난 사람이 셋 있어도 S는 하나뿐이고, 아무도 그 수준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S를 받는다.
이 상태에서 나온 등급을 근거로 "당신은 이런 점이 부족했다"는 대화를 시작한다. 근거가 근거가 아닌데 대화만 진지하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문제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평가 제도가 나쁜 게 아니다. 한 제도에 세 가지 일을 시킨 것이 문제다.
분배는 여전히 필요하다. 회사가 가진 돈은 유한하고 누군가는 나눠야 한다. 선별도 필요하다. 조직에는 승진과 배치와 때로는 이별에 대한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장은 말할 것도 없다.
셋 다 필요하다. 다만 셋을 같은 테이블에 올려두지 않으면 된다.
이게 이론적 이상론처럼 들린다면, 다음 편을 보면 된다. 이미 이 분리를 실행한 회사들이 있고, 도구만 바꾸고 분리는 하지 않은 회사들도 있다. 결과는 뚜렷하게 갈렸다.
🌱 주니어를 위한 한 문단
평가 면담에서 방어적으로 굴게 되는 자신이 미숙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그건 미숙함이 아니라 정상 반응이다. 돈이 걸린 대화에서 약점을 순순히 인정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대신 이렇게 해볼 수 있다. 성장에 대한 대화를 평가 시즌이 아닌 때로 옮기는 것. 등급도 인상률도 걸려 있지 않은 평범한 8월의 1:1에서 "요즘 제가 놓치고 있는 게 뭘까요"라고 물으면, 같은 사람에게서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온다. 상대도 그때는 심판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
퍼플즈 노트
평가 테이블에서 나눈 대화는 대부분 방어의 기록으로 남는다. 정작 일에 대한 진짜 정보 — 누구와 함께할 때 잘 풀렸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몰입했는지 — 는 그 테이블 밖에 흩어져 있다.
퍼플즈는 그 흩어진 것을 다룬다. 개개인의 업무 취향을 연결해 잘 맞는 동료끼리 팀을 이루게 하고, 협업 과정의 마찰을 줄이는 것. 등급을 매기지 않는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가 결국 일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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