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재발명 ③]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떼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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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 우리는 왜 사람을 평가하는가. 이 시리즈는 평가 제도를 더 잘 만드는 법을 다루지 않는다. 평가라는 제도가 애초에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다섯 편에 걸쳐 되짚는다.
①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 드러커는 한 적이 없다
지난 편의 결론은 이랬다. 평가 제도가 나쁜 게 아니라, 하나의 제도에 분배·선별·성장이라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시킨 것이 문제라고.
그럼 실제로 이 셋을 떼어낸 회사가 있을까. 있다. 그리고 떼어내지 않은 채 도구만 바꾼 회사도 있다. 결과는 뚜렷하게 갈렸다.
넷플릭스 — 분배를 회사 밖으로 내보냈다
넷플릭스에 연례 인사고과가 없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다만 흔히 오해되는 것과 달리, 넷플릭스에 평가 절차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CTO 엘리자베스 스톤의 설명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공식적인 성과 평가를 하지 않는 대신 연 1회 360 프로세스를 안전망으로 유지한다. 다만 이 절차는 평가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개선을 돕는 피드백의 맥락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보상 검토와 승진 검토가 각각 독립된 절차로 존재한다.
즉 넷플릭스는 평가를 없앤 게 아니다. 셋을 세 개의 별도 프로세스로 쪼갰다.
핵심은 분배를 다루는 방식이다. 넷플릭스의 보상 원칙은 개인의 등급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장 가치, 이른바 개인별 시장 최고가에 맞추는 것이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중요하다. 보상 기준이 회사 안이 아니라 회사 밖에 있으면, 보상은 더 이상 제로섬이 아니게 된다. 동료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내 몫이 줄지 않는다. 내 인상분은 내 시장 가치가 정한다.
선별은 키퍼 테스트가 맡는다. 이 직원이 떠난다고 할 때 붙잡기 위해 싸울 것인가. 통과하지 못하면 성과 개선 계획 없이 두둑한 퇴직금과 함께 곧바로 이별한다. 냉혹하다는 평가를 오래 받아왔고, 실제로 냉혹하다.
다만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이 방식이 성립하는 이유는 앞의 두 가지 조건 때문이다. 시장 최고가로 지급하기 때문에 퇴직금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고, 상시 피드백이 돌기 때문에 이별이 기습이 되지 않는다. 키퍼 테스트만 떼어다 도입하는 건 가장 위험한 오독이다.
스포티파이 — 성장만 남기고 나머지를 옮겼다
스포티파이는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동료 피드백이 연봉 결정에 반영되는 구조였다.
결과는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회사 자체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큰 개선점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보다 우호적인 평가를 최대한 많이 모으도록 유인이 작동했다. 서로 좋은 말만 주고받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여기서 스포티파이가 내린 판단이 이 시리즈의 핵심이다. 동료 피드백 제도가 실패한 게 아니라, 그것이 돈과 연결되어 있던 것이 문제였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보상 검토를 완전히 별도의 연간 절차로 분리했다. 성과 개발 과정은 보상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되, 일상적인 성장 대화와는 분리된 채로 운영된다. 승진도 연봉 검토 주기에 묶여 있지 않다. 본인과 매니저가 다음 단계에서 일관되게 일하고 있다는 데 합의하면 그때가 승진 시점이다.
돈이 테이블에서 내려가자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 약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구글 — 주기는 줄였지만 분리하지는 않았다
구글은 2022년 5월 GRAD라는 새 제도를 도입했다. 연 2회이던 공식 평가를 연 1회로 줄이고, 상시 피드백과 경력 개발에 무게를 옮겼다. 배경에는 내부 조사 결과가 있었다. 직원의 47%가 기존 연 2회 평가를 시간 낭비로 여긴다고 답한 것이다.
주기를 절반으로 줄인 건 분명한 개선이다. 다만 GRAD에서도 연 1회 부여되는 등급은 여전히 보너스와 주식 보상으로 이어진다. 분배와 선별과 성장이 하나의 등급에 그대로 묶여 있다.
그래서 구글의 사례는 이렇게 읽는 편이 정확하다. 평가의 빈도를 줄이는 것과 평가의 기능을 분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전자는 피로를 줄이고, 후자는 대화의 성격을 바꾼다. 구글은 앞의 것을 했다.
카카오 — 도구만 바꿨을 때 벌어지는 일
카카오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며 상향·동료·하향 평가로 구성된 다면평가를 도입했다. 취지만 보면 이 시리즈가 권하는 방향에 가깝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등급 대신, 함께 일한 사람들의 관점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관점이 어디로 흘러갔느냐였다.
동료 평가 항목에는 이 동료와 다시 함께 일하겠느냐는 객관식 문항이 있었고, 평가받은 사람은 몇 퍼센트의 동료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21년 초 사내 익명 게시판을 통해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고,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 청원이 접수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회사는 전 직원 간담회를 열어 논란이 된 문항의 표현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사례에서 배울 것은 다면평가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스포티파이도 넷플릭스도 동료 피드백을 쓴다. 차이는 그 피드백이 성장의 재료로 쓰이느냐, 아니면 판정의 근거로 쓰이느냐다.
같은 질문도 놓이는 자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된다. 코칭 대화 안에서 던져지면 협업 방식을 조정하는 단서가 되고, 등급과 비율로 환산되어 본인에게 통보되면 판결문이 된다. 카카오는 도구를 바꿨지만 그 도구가 놓인 자리는 바꾸지 않았다.
무엇이 갈랐나
네 회사를 같은 축에 놓고 보면 구도가 선명해진다.
분배 | 선별 | 성장 | |
|---|---|---|---|
넷플릭스 | 시장 최고가 (회사 밖 기준) | 키퍼 테스트 (상시) | 360 피드백 (별도) |
스포티파이 | 별도 연간 절차 | 승진은 합의 시점에 | 상시 피드백 (분리) |
구글 | 연 1회 등급에 연동 | 연 1회 등급에 연동 | 연 1회 등급에 연동 |
카카오 | 등급에 연동 | 등급에 연동 | 동료 평가가 판정으로 |
앞의 둘은 셋을 쪼갰고, 뒤의 둘은 묶어둔 채 도구나 주기만 손봤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AI가 일의 산출량을 대부분 흡수하기 시작하면, 저 세 칸 중 무엇이 먼저 무너질까. 다음 편의 주제다.
🌱 주니어를 위한 한 문단
회사를 고를 때 복지 목록보다 훨씬 많은 걸 알려주는 질문이 하나 있다. 면접 마지막에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성과 피드백과 연봉 논의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지나요, 아니면 따로인가요?"
따로라고 답하는 회사는 최소한 이 문제를 고민해본 회사다. 같은 자리라고 답한다면 그것도 정보다. 그 회사에서 받게 될 피드백은 코칭이 아니라 판정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나쁜 회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성장 대화는 다른 데서 따로 구해야 한다는 걸 미리 알게 된다.
퍼플즈 노트
넷플릭스가 말하는 인재 밀도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이 조직에 남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최고의 동료인가.
그런데 이 질문에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조건이 하나 붙는다. 누가 나와 잘 맞는지는 함께 일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넷플릭스가 방출이라는 비싼 방법을 쓰는 것도 그래서다. 겪어본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으니, 판단은 늦고 정리 비용은 크다.
이 조건 자체는 바꿀 수 없다. 대신 바꿀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다. 한 번 맞춰보는 데 드는 비용, 그리고 맞춰볼 수 있는 횟수.
퍼플즈는 여기에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사람을 만나 실제로 일해보고, 끝난 뒤 남긴 피드백이 자기 업무 취향의 기록으로 쌓인다. 그 기록이 쌓일수록 다음 연결의 정확도가 올라간다. 처음부터 완벽한 짝을 찾아주는 도구라기보다, 시도할 수 있는 횟수를 늘리고 그 결과가 다음에 쓰이게 만드는 서비스에 가깝다.
밀도는 한 번의 판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시리즈가 평가에 대해 말해온 것과 같다.
참고 출처
Business Insider — Netflix CTO on no formal performance reviews (2025.11)
Bain & Company — How Spotify Balances Employee Autonomy and Accountability
Spotify 커리어 프레임워크
구글 GRAD 도입 발표 관련 보도 (2022.5)
시사IN, 한국경제 — 카카오 동료평가 논란 (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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