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plz
Culture

1년 동안 50명을 거치고 마지막에 통과된 한 사람 — 페이지와 슈미트의 17년

혜린혜린
1년 동안 50명을 거치고 마지막에 통과된 한 사람 — 페이지와 슈미트의 17년

2001년, 한 회사가 1년 동안 실리콘밸리 톱 임원 50명을 면담했습니다. 모두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회사의 두 창업자가 1년 동안 톱 임원들과 사이가 나빠질 정도로 까다로운 면담을 거듭했지만, 50명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통과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결정적으로 통과시킨 건 비즈니스 역량이 아니라 버닝 맨 페스티벌이었습니다.

그 회사가 구글이고, 두 사람이 래리 페이지와 에릭 슈미트입니다. 17년 협업의 시작 이야기입니다.

한 창업자는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알았다

1998년 9월, 스탠퍼드 박사 과정 동기 두 명이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한 차고에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한 명이 래리 페이지, 한 명이 그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었습니다. 둘 다 25살이었고, 회사 이름은 구글이었습니다. 그들이 만든 검색 엔진은 빠르게 자랐습니다. 1999년 1년 만에 회사는 직원 8명에서 40명으로 성장했고, 2001년이 됐을 때 직원이 200명을 넘었습니다.

회사가 빠르게 자라자 보드가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두 창업자에게 비즈니스 운영 역량을 가진 외부 CEO가 필요하다는 것. 25살의 페이지는 박사 과정 출신의 엔지니어였습니다. 검색 엔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일은 잘했지만, 빠르게 자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다른 종류의 일이었습니다. 구글의 두 주요 투자자 존 도어(KPCB)와 마이클 모리츠(세쿼이아)가 외부 CEO 영입을 강하게 권고했습니다.

영입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페이지는 까다로운 면담자였습니다. 그는 후보의 GPA·SAT 점수, 멘사 같은 두뇌 게임 해결 능력까지 확인하는 면담 방식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두 창업자가 함께 실리콘밸리 톱 임원 50명을 면담했습니다. 모두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50명 면담의 결과는 50번의 거절이었습니다. 페이지에게 들어맞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페이지가 한 일은 한 가지였습니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1년 동안 점점 더 명확히 알아가는 것.

그가 찾고 있었던 사람의 윤곽이 점점 분명해졌습니다. 비즈니스 운영 경험이 풍부하면서, 25살 창업자의 비전과 자기 결정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 자기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그와 균형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

50명을 거치고 나서 페이지는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의 결을 정확히 알게 됐습니다. 그게 한 명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가진 비즈니스 구조의 경험

에릭 슈미트가 페이지를 만나러 왔을 때 그는 46살이었습니다. 페이지보다 21살 위였습니다.

슈미트의 경력은 길었습니다. 프린스턴에서 전기공학 학부(1976)를 졸업한 뒤 UC 버클리에서 컴퓨터과학 박사(1982)를 받았습니다. 1983년 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첫 소프트웨어 매니저로 입사했습니다. 회사가 창업된 지 1년밖에 안 됐을 때였습니다. 14년 동안 썬에 있으면서 그는 CTO까지 올랐고, 자바(Java)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과 보급에 관여했습니다. 자바는 인터넷의 핵심 언어가 됐습니다.

1997년 그는 노벨(Novell)의 CEO로 옮겼습니다. 노벨은 네트워크 운영 체제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리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슈미트는 4년 동안 노벨의 비즈니스 구조를 다시 정립하려 노력했습니다. 회사 자체는 장기적인 쇠퇴를 뒤집지 못했지만, 슈미트는 그 4년 동안 상장 회사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 구조를 정립하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슈미트가 가진 것은 비즈니스 구조의 경험이었습니다. 큰 기술 회사의 운영, 상장 회사의 거버넌스, 직원 수천 명의 조직 관리. 페이지가 1년 동안 찾고 있던 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2001년 초, 슈미트가 페이지의 면담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를 결정적으로 통과시킨 건 비즈니스 역량이 아니었습니다. 버닝 맨 페스티벌이었습니다.

버닝 맨은 매년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네바다 사막에서 열리는 예술·공동체 페스티벌입니다. 페이지는 매년 참석하는 팬이었습니다. 그리고 슈미트도 같은 팬이었습니다. 면담 중 그 이야기가 나왔고, 그 순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슈미트 본인이 후에 회고했습니다.

"제가 채용된 한 이유는 페이지·브린과 함께 버닝 맨 페스티벌의 동료 팬이라서였습니다." - 에릭 슈미트

50명의 톱 임원이 비즈니스 역량으로 통과되지 못한 자리를, 한 사람이 페스티벌의 공통 팬이라는 이유로 통과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의외인 이유 같지만, 그 안에 본질이 있었습니다. 페이지가 1년 동안 찾고 있던 건 비즈니스 역량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회사를 함께 운영할 사람은 같은 결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 결을 비즈니스 면담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고, 버닝 맨이라는 공통 팬덤이 그 결을 보여줬습니다.

2001년 3월, 슈미트가 구글의 회장으로 합류했습니다. 그해 8월, CEO로 승격됐습니다. 그날부터 페이지와 슈미트의 협업이 시작됐습니다.

10년의 협업, 어른 감독에서 동료까지

페이지와 슈미트의 협업은 처음부터 한 가지 형태를 가졌습니다. CEO가 단독 결정권을 갖지 않는 구조. 슈미트가 CEO였지만, 페이지(제품 사장)·브린(기술 사장)과 함께 셋이 동등하게 결정했습니다. 후에 "트리움비라테(Triumvirate, 세 명의 통치)"로 불리게 된 형태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 슈미트가 늘 마주한 상대는 페이지였습니다. 회사의 비전과 제품 방향은 페이지가 끌고 갔고, 비즈니스 구조와 운영은 슈미트가 받쳤습니다.

협업의 시작 무렵, 슈미트는 페이지를 어떻게 대했는지 후에 회고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소년들'로 대했습니다. 존중하지만 거의 아버지 같은 방식으로." - 에릭 슈미트

46살의 CEO와 25살의 두 창업자.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결의 관계였습니다. 슈미트는 비즈니스 경험이 21년 더 많았고, 페이지는 검색 엔진의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두 사람이 같이 만든 것이 있습니다. 2004년 8월 구글 IPO. 지메일, 구글 맵스, 크롬 브라우저. 2006년 유튜브 인수. 안드로이드의 글로벌 모바일 OS 1위. 이 모든 것이 슈미트가 CEO였던 10년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직원은 200명에서 32,000명으로, 매출은 $86M에서 $38B로 자랐습니다. 10년에 약 440배 성장입니다.

협업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슈미트 본인이 묘사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역할을 농담으로 종종 "어른 감독(Adult Supervis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그 표현이 통용됐습니다. 25살의 천재 창업자에게 비즈니스 운영의 균형을 잡아줄 어른이 필요했고, 슈미트가 그 역할이었다는 결.

그런데 협업 중간쯤에 슈미트의 인식이 바뀐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큰 전략 논쟁 중에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소년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비즈니스 도전들을 거쳐 해결한 남자들이라는 걸." - 에릭 슈미트

슈미트가 한 일은 한 가지였습니다. 자기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페이지가 자라는 만큼 자기 역할을 줄여가는 것. "어른 감독"으로 시작한 그의 자세가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지와 같이 결정하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갔습니다.

C형 Creator

한 줄 정의 남들이 보지 못한 연결고리를 찾아 새 가능성을 여는 설계자

키워드 창의성 · 독창성 · 발상전환 · 입체사고 · 통찰력

강점

  • 새 가능성으로 팀이 같은 길에 머무르지 않음

  • 독창적 시각으로 새로운 해결책 제시

  • 발상 폭 확장

주의점

  • 발상 단계 머물며 실행 어려움

  • 사고 시간 길어 빠른 결정 시 페이스 늦어짐


F형 Facilitator

한 줄 정의 규칙과 배려 사이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을 만드는 조율자

키워드 원활한소통 · 포용력 · 의견조율 · 안정감 · 협력

강점

  • 의견 조율로 팀 안에서 소외 방지

  • 균형 결정으로 한쪽 치우침 방지

  • 안정 환경으로 부담 없이 일함

주의점

  • 모든 동의 기다림으로 결정 지연

  • 균형 흔드는 변화 조심으로 새 시도 막힘

일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Work DNA'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의 협업이 왜 그렇게 작동했는지 분명해집니다. 래리 페이지는 C형 Creator 유형입니다. 일과 작품을 우선하고, 충분한 사고를 거치고, 매번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고 새 영역을 여는 설계자가 본질입니다.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을 만든 것, 구글 X의 문샷 프로젝트들, 2015년 알파벳으로 회사를 재편한 것, 모두 페이지의 본질입니다.

에릭 슈미트는 F형 Facilitator 유형입니다. 사람과 관계를 우선하고, 충분한 합의를 거치고, 정해진 체계 안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규칙과 배려 사이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을 만드는 조율자가 본질입니다. 두 창업자 사이의 균형을 만든 것, 회사의 비즈니스 구조와 IPO를 정립한 것, 자기 역할을 시간에 맞춰 줄여간 것, 모두 슈미트의 본질입니다.

두 사람은 무게중심이 달랐습니다(페이지는 작품·기술, 슈미트는 사람·균형). 시도하는 자세도 달랐습니다(페이지는 늘 새 시도, 슈미트는 정해진 체계). 딱 하나, 충분한 합의를 거쳐 결정하는 자세는 같았습니다. 둘 다 빠른 단독 결정보다는 신중한 토론을 통한 결정을 선호했습니다.

두 사람의 협업이 10년 동안 작동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페이지의 새 비전과 슈미트의 비즈니스 구조가 한 회의실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비전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구조와 운영의 시야로 받아주는 방식이었습니다.

2011년, "어른 감독, 더 이상 필요 없음"

C-F 조합의 강점

새 비전 + 균형의 자연스러운 보완: C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면, F가 그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는 균형 잡힌 환경을 만듦. 한 사람은 작품·새 시도에, 한 사람은 사람·균형에 책임을 짐
충분한 합의를 거치는 자세 공유: 둘 다 빠른 단독 결정보다는 신중한 토론·합의를 선호하므로 결정의 페이스가 자연스럽게 맞음 (diagonal-R 시그니처: R축 일치)
자연스러운 영역 분담: C는 새 비전과 제품 방향을, F는 조직·운영·균형을 맡는 명확한 분리
자기 자리 양보의 협업: F가 자기 위치에 집착하지 않고 C의 비전이 자라는 만큼 자기 역할을 줄여갈 때, 가장 우아한 협업이 됨

C-F 조합의 주의점

무게중심 차이 (C 작품·새 시도 vs F 사람·균형) → 의사결정 시 두 시야를 모두 거치는 절차 (C의 비전 시점 + F의 사람·균형 시점)
시도하는 자세 차이 (C는 늘 새 시도 vs F는 정해진 체계 안에서 안정) → 새 시도의 검토 단계와 안정적 실행 단계를 명확히 구분해 합의
결정 페이스 느려질 위험: 둘 다 충분한 합의를 선호해 빠른 단독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페이스가 늦어질 수 있음 → 결정의 크기에 따라 페이스 분담 (큰 비전·전략은 충분한 합의로, 운영 결정은 F에게 단독 위임)
F의 양보가 일방적이 될 위험: F가 자기 역할을 너무 자주 양보하면 본인의 기여가 보이지 않을 수 있음 → 명시적인 상호 인정 표현 필요 (슈미트가 자기를 "Adult Supervision"이라고 농담으로 부르면서도 본인 역할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한 것이 좋은 예)

2011년 1월 20일, 구글이 한 가지 발표를 했습니다. 슈미트가 4월 4일부터 CEO에서 내려오고, 래리 페이지가 CEO로 돌아간다는 것. 10년 만의 결정이었습니다.

발표 직후 슈미트가 자기 트위터에 한 줄을 적었습니다.

"일상의 어른 감독, 더 이상 필요 없음!" - 에릭 슈미트 (트위터, 2011.1.20)

10년 동안 자기 역할을 "어른 감독"이라고 농담으로 불러왔던 그가, 그 역할이 끝나는 날 같은 농담으로 자기 사임을 발표한 것입니다. 자기를 가볍게 보면서도 균형을 잡는 F형의 본질이 마지막 순간까지 드러난 표현이었습니다.

슈미트가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결정이었습니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그가 협업 중간에 깨달았던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소년들'이 아니다"라는 인식. 페이지가 38살이 됐고, 회사를 운영할 모든 역량을 갖췄으니, 자기가 자기 자리를 양보할 시점이 됐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내려놓는 방식도 우아했습니다. 슈미트는 회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회장(Executive Chairman)으로 자리를 옮겨 페이지를 옆에서 받쳐줬습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고, 그 후 2020년까지 기술 자문으로 남았습니다. CEO로 10년, 이후 자리에서 9년. 총 17년의 협업이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페이지만 있었다면 구글이 그렇게 빠르게 글로벌 회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25살 창업자에게 부족했던 비즈니스 구조·상장 회사 운영·수만 명 조직 관리를, 슈미트가 10년 동안 옆에서 채워줬습니다. 슈미트만 있었다면 구글은 새 영역을 그렇게 빠르게 열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페이지의 비전과 새 시도가 없었다면 지메일도, 크롬도, 안드로이드도, 알파벳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젊은 창업자가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을 옆에 둘 때, 협업은 가장 멀리 갑니다.

페이지가 1년 동안 50명을 면담한 이유는 그저 비즈니스 역량 있는 임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와 같은 결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50명의 톱 임원이 통과되지 못한 자리를, 버닝 맨의 공통 팬 한 명이 통과한 것입니다. 회사를 함께 운영할 사람은 같은 결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본질을 페이지가 1년 동안 점점 명확히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 자기 결단으로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협업은 우아하게 마무리됩니다. 슈미트가 2011년에 "어른 감독, 더 이상 필요 없음"이라는 한 줄로 자기 자리를 양보했을 때, 그건 페이지가 자라났다는 인정이자 자기 역할이 끝났다는 명료한 선언이었습니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찾고, 자기 자리를 자기 결단으로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협업은 가장 우아하게 시작되고 가장 우아하게 마무리됩니다.